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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키스 자렛 [La Fenice]  
제목 [리뷰] 키스 자렛 [La Fenice]   2018-11-29


이상희


정점을 거듭해서 넘어서는 그의 연주


[The Koln Concert] 이야기를 꺼내지 않을 수 없겠다. 누구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이 명반은 키스 자렛뿐 아니라 재즈 역사 가운데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스윙, 비밥, 쿨 재즈, 하드밥. 퓨전 재즈에 이르는 스타일의 획기적인 변화에 버금가는 즉흥 솔로 콘서트라는 새로운 재즈 어법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그가 들려준 것은 단지 재즈의 장르적 실험이라기보다 음 자체에 관한 탐구, 그리고 그것으로 자신만의 음악적 세계를 만들어나가는 것이었다. 키스 자렛의 이러한 시도는 그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고 많은 뮤지션에게 영감을 불어넣었다.


이번에 ECM에서 발표한 그의 새로운 즉흥 솔로 콘서트 작품 [La Fenice]는 2006년 7월에 베네치아의 라 페니체 대극장에서 연주된 실황이다. 마찬가지로 즉흥 솔로 콘서트 앨범인 [The Carnegie Hall Concert]가 녹음되었던 2005년과는 그리 멀리 떨어지지 않은 시간이다. 이 앨범에서도 그는 재즈라는 울타리 안에서가 아닌 음의 존재론적 세계로 향한 여정을 보여준다. 즉흥 솔로 작품이 나올 때마다 비교 대상이 되는 숙명을 지닌 [The Koln Concert]와 견주어 보았을 때 이번 앨범이야말로 그 앨범의 위업과 맞먹는 작품이 아닐까 싶다. 대담한 표현력과 높은 개연성의 곡 전개, 투명한 서정성 등이 [The Koln Concert]에 필적할 만하다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어쨌거나 또 다른 명반의 탄생은 틀림없어 보인다.


여느 때와 같이 각 트랙은 특정 제목 없이 ‘Part’라는 이름으로 나누어져 있다. ‘Part I’에서부터 그는 긴장을 고조시키는 연주를 들려준다. 왼손으로 저음을 강하게 훑어 내는 타건을 동반하여 마치 음을 쏟아붓고 있는 듯한 느낌을 전달한다. 어떤 조성 안에 귀속되길 거부하는 음들의 향연이 그 자체로 하나의 세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것은 혼돈을 표상한다기보다는 음과 음 사이의 정합적인 관계를 포착한 결과로 보인다. 느려지는 중반부부터는 음들의 관계를 음미하면서 음들이 나아갈 수 있는 방향을 찾아가되 특유의 서정성을 잃지 않음으로써 묘한 긴장 관계를 연출한다. ‘Part II’는 ‘Part I’의 연장선으로 어떤 추동력으로 활성화된 음들의 향연이 마지막으로 남김없이 분출되고 잠잠해진다.



‘Part III’부터는 구성적인 방식으로 일정한 형태를 갖춘 연주를 들려준다. 하나의 코드만 가지고 그 안에 표현할 수 있는 음들을 채워 넣는다. 기본적인 형식만 갖춘 제한된 영역 안에서 많은 음을 쓰지 않고도 블루스와 가스펠의 느낌을 충실히 전달한다. ‘Part IV’에서는 아름다운 멜로디의 서정적 발라드로 급격히 도약한다. 단순한 모티브의 친숙한 멜로디를 뒷받침하는 풍성한 보이싱과 우아함을 잃지 않는 곡 전개가 따로 하나의 완결된 곡으로 연주되어도 무방할 만큼 유려함을 지녔다. ‘Part V’에서는 ‘Part I’에서부터 이어져 오던 폭발적인 에너지가 이제는 구체적인 것으로 종합되면서 역동성과 친근함, 그리고 명랑함을 갖춘 음악으로 빚어진다.


‘Part VI’에서 ‘Part VII’까지는 느린 템포의 연주로 채워지는데 그사이에 ‘The Sun Whose Rays’가 삽입된 것이 눈에 띈다. 앨범의 콘셉트대로라면 이 선곡 역시 즉흥으로 이루어진 것일진대 구조적으로는 긴장과 이완이 적절히 배분된 형태를 띠게 한다. ‘Part VI’와 ‘Part VII’의 화성적으로 타이트한 연주들 사이에서 긴장감을 다소 가라앉히는 느낌이라고나 할까. 어쩌면 그 곡이 제목처럼 태양이 비치듯 연주 가운데 불현듯이 그에게 찾아왔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에게 더욱 각별한 의미로 다가왔을 수도 있겠다. 마지막 ‘Part VIII’에서는 모든 긴장이 완전히 해소되고 들썩거리는 리듬의 블루스 즉흥곡으로 본 공연이 마무리된 후 앙코르 세 곡으로 모든 연주가 끝난다.


모든 곡을 무대 위에서 즉흥으로 만들어내는 믿어지지 않는 그의 연주와 대할 때마다 이것이 과연 숙련의 결과인가 아니면 창조성 그 자체의 발현인가 하는 질문을 지울 수 없다. 물론 그 대답은 양쪽 중간 어딘가에서 찾을 수 있겠지만, 그 역량은 가히 독보적이라 할 수 있겠다. 현재 자신의 상태, 주변 환경, 객석의 반응, 무수히 떠오르는 영감 속에서 능숙하게 연결고리를 찾아내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 모습은 언제 들어도 흥미롭다. 만성피로증후군을 딛고 전작 [The Carnegie Hall Concert]에 이어 단단한 즉흥 솔로 연주를 들려주는 그가 반갑다. 21세기 초, 또 다른 고전을 만들어나가는 새로운 전성기 때의 연주를 감상할 수 있는 뜻깊은 작품임이 틀림없다. 앞으로 공개될 앨범, 혹은 무대에서 이루어질 연주는 어떨지, 고전이 된 자신을 계속 넘어서는 그의 연주를 앞으로도 오랫동안 듣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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