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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년을 빛낸 앨범] 김오키 [Cherubim’s Wrath]  
제목 [10년을 빛낸 앨범] 김오키 [Cherubim’s Wrath]   2016-08-15


김오키 [Cherubim’s Wrath]


한국 재즈의 지난 10년을 넘어 그 이상 오래 기억될 명작


어느덧 색소포니스트 김오키의 첫 앨범 [Cherubim’s Wrath]이 세상에 나온 지도 3년이 되었다. 그럼에도 이 앨범이 지닌 신선한 충격은 여전하다. 그 사이 재즈의 풍경이 바뀌지 않았다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이 앨범이 시간을 넘어서는 새로움을 지녔다는 것이다.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이 아방가르드 혹은 프리재즈에 해당하기 때문이 아니다. 재즈 중에서 가장 낯설고 단번에 공감하기 어려운 것이 아방가르드나 프리재즈인 것은 사실이다. 그래서 매번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오히려 이 앨범에 담긴 음악은 편하게만 들을 수 없는 표현, 말 그대로 진보적이고 자유로운 부분이 있기는 하지만 전반적으로는 듣기가 수월하다. 앨범을 관통하는 명확한 주제가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김오키가 살았던, 재건축을 위해 허물어진 동네를 담은 앨범 표지처럼 김오키는 이 앨범에서 경제적 빈곤을 넘어 운명적으로 소외된 존재를 조명했다. 이를 통해 1970년대를 난쟁이의 현실이 지금도 지속되고 있음을 생각하게 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전언(傳言)을 위해 음악을 희생하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않았다. 대신 김오키는 널리 알려진 문학작품, 그러니까 1978년에 출간되어 이듬해 동인문학상을 수상한 조세희의 연작 소설집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음악에 가져와 예술적, 음악적 측면을 돋보이게 했다. 알려졌다시피 이 소설집은 난쟁이로 묘사된 1970년대 도시 빈민층의 삶과 그 안에 담긴 절망을 그려냈다. 김오키는 이 난쟁이 서사를 바탕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드러냈다. 그 결과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 ‘칼날’처럼 직접 소설집에 실린 단편의 제목을 그대로 사용한 곡부터 소설집의 첫 소설 [뫼비우스의 띠]의 등장인물에서 가져온 ‘꼽추’ 그리고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에 등장하는 영희의 마지막 대사 ‘아버지를 난장이라 부르는 악당은 죽여 버려’에서 영감을 얻은 ‘영희마음 옥희마음’ 같은 곡들이 앨범의 중심에 자리 잡았다.


연주 또한 소설집을 읽으면서 느끼게 되는 비감, 분노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예로 ‘너와 나의 음모론’은 김성배의 베이스와 김오키의 색소폰이 만드는 긴장 끝에 밴드가 폭발해 버리며, ‘꼽추’는 슬픔을 안으로 참지만 결국 눈물을 흘릴 수밖에 없는, 인위적으로 조절하기 힘든 우리네 ‘한(恨)의 정서’를 떠올리게 한다. ‘칼날’은 색소폰이 날카로움을 넘어 야수처럼 포효하고 ‘영희마음 옥희마음’은 비감을 넘어 분노의 에너지를 발산한다. 이처럼 연주가 서사적이고 그에 따른 표현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기에 거칠고 어지러운 사운드의 질감과 상관없이 감상이 비교적 편하다.


한편 아방가르드 혹은 프리재즈에 속하는 음악이지만 그것이 무조건 남들이 하지 않았던 연주적 표현에 집착하지 않았다는 것도 스타일과 상관없이 앨범의 감상을 용이하게 한다. 요즈음 등장하는 진보적 성향의 연주들은 자유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간 나머지 즉흥을 넘어선 우발적 사건의 느낌이 강하다. 때로는 연주자 스스로도 통제하기 어려운 자연적 발화 같은 연주들이 많다. 그래서 차이, 추상적이고 생동적인 면이 강해 감상이 어려웠다.


하지만 김오키는 마음 가는 대로 곡을 쓰고 자유로이 연주를 펼치는 중에도 재즈를 재즈로 바라보게 만드는 전통적인 측면, 특히 존 콜트레인, 아치 셉, 알버트 아일러 등의 정치적인 부분에 관심을 자유로운 연주로 표출하는 동시에 진보적인 재즈에 대한 존중을 잊지 않았다. 이 60년대 후반의 진보적 연주자들은 기존의 형식으로부터 자유로운 연주를 추구한다고 형식 자체를 무시하지 않았다. 자신만의 형식을 찾으려 했다. 김오키는 이런 부분을 존중해 모순되는 표현일지 모르나 고풍스러운 진보적 사운드를 만들어 냈다. 그래서 에너지가 넘쳐 폭발하는 순간도 있지만 그것은 이내 서사와 연결된 형식 안으로 다시 수렴된다. 이처럼 형식미를 고려한 아방가르드 혹은 프리재즈는 최근 다양성을 확보해 나가고 있는 국내 재즈에서도 매우 드문 일이었다. 발매된 지 3년이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김오키라는 색소포니스트 자체도 신선하고 특별했다. 원래 춤꾼이었다가 뒤늦게 재즈와 색소폰의 매력에 빠져 거의 모든 부분을 독학했다는 이 색소포니스트는 국내 재즈계에서 주변인적인 존재였다. 외국 연주자와 비교한다면 지난 2015년 하늘에서 뚝 떨어지듯 앨범 [The Epic]을 들고 나타나 큰 주목을 받은 색소포니스트 카마시 워싱턴 같다고 할 수 있을까? 아무튼 그의 주변인적인 이미지는 소외된 존재들의 비감과 분노를 다룬 이 앨범의 성격과 맞물려 감상을 더욱 특별하게 했다.


물론 이것은 음악 외적인 요소이다. 그러나 이 앨범을 통해 평단의 호평 속에 자신을 널리 알린 후에도 그가 여전히 주변인 아니 재즈의 경계를 탐험하고 있다는 것은 분명 주목할 부분이다. 그는 인디 록, 힙합과의 협연, 유사 음악극 형식의 공연 등 국내에서 쉽게 접하기 어려운 음악적 영역을 개척하고 있다. 이를 통해 진보적 재즈를 넘어 국내 재즈의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다만 아쉽고 불안한 부분은 늘 새로움을 향한 그의 욕구로 인해 더 이상 이 첫 앨범 같은 충격적이며 친근하고 신선하면서도 전통적인 음악이 나오지 않을 것 같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이번 앨범은 한국 재즈의 지난 10년을 너머 더 오래 특별함으로 기억될 것이다.  




최규용 | 재즈 칼럼니스트

라디오 키스 재즈 담당 PD이다.

저서로는 [재즈], [재즈와 살다]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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